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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 보면, 삶을 절망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내가 주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분야를 탐구했던 데 비해 녀석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실현가능한 분야에 천착했던 거지 싶다. 말하자면 녀석과 나는 그 나이에 비해 제법 진중한 염세주의자였던 셈인데, 다른 게 하나 더 있다면 녀석은 나와 달리 언제나 무척 쾌활한 생활태도를 견지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녀석이 염세주의자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랬어도 나는 녀석을 사이비 염세주의자로 취급했다. 염세주의자는 안팎으로 충실하게 염세해야 한다는 게 그 때 내가 갖고 있던 철학이었다. 그게 얼마나 조잡한 잣대인지 나중에는 깨달았지만.

내가 녀석에게 담배 피우는 방법을 전수받은 건 고등학교 1학년 초의 어느 날 방과 후 학교 뒷동산에서였다. 그 때 피웠던 담배가 '청솔'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자리까지 가게 된 경위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 이후 녀석이 자기 지인들에게 나를 ‘짝꿍’이라고 소개하고 그러는 바람에 한동안 이름 대신 짝꿍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걸 생각해 보면 우연히 반에서 짝꿍이 된 게 계기였던 듯하다.
나무등걸에 앉아 제법 골초다운 자세로 담배를 피우며 녀석은 그랬다. 이딴 거 배워서 좋을 거 하나 없다고. 그게 뭐 대단한 기술이라고 그런 소릴 하나 싶었다. 나 역시 좋을 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염세주의자에게 담배는 필수품일 거라 여겼다. 첫 한 개비는 뻐끔이로 태워 없앴다. 야야, 담배가 아깝다. 녀석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이런 걸 왜 피우나 하고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오기가 생겼다. 한 개비를 더 피워 물었다. 첫 모금부터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담배를 처음 피우는 사람들이 기침을 한다는 건 생거짓말이다. 나는 기침커녕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반쯤 피우다 헛구역질을 심하게 하면서 쓰러져 버렸을 뿐. 누워 올려다본 하늘이 빨개지다 노래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얼굴이 벌개지도록 기침을 한 건 오히려 녀석이었다. 기침을 하면서 녀석은 키들키들 웃어댔다. 눈물이며 콧물로 번들거리는 얼굴을 닦을 새도 없이, 너 같은 녀석 처음 본다며. 그렇게 담배를 배웠다.

그 당시의 일반적인 수식어로 녀석은 ‘까진 놈’이었다. 까진 놈은 대략 세 부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예비 폭력배로서 싸움질을 하고 다니던 놈들, 또 하나는 예비 제비족으로서 여자만 집적대고 다니던 놈들, 나머지 하나는 이도 저도 아니거나 둘 다이거나 하던 놈들이었다. 녀석은 글쎄,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해야 옳겠다.
그래도 녀석은 까진 놈으로서 까진 놈다운 제 나름의 세상을 착실하게 구축하고 있었다. 먼저, 싸움을 곧잘 했다. 녀석이 주로 구사하는 싸움의 기술은 이른바 ‘아스발이’라는, 상대의 하체를 걸어 넘어뜨린 다음 올라타 줘패는 거였다. 팰 때는 무자비하게! 녀석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싸움의 자세였다. 아스발이 다음으로 잘 써먹는 게 소위 ‘하이방’으로서 상대가 자기보다 세 보이거나 여럿일 때 써먹는 기술이었다. 뭔가 했더니 방울소리 나도록 달아나는 거였다. 녀석은 운동회 때 반 대표로 나갈 만큼 달리기를 잘 하긴 했다. 그랬어도 녀석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에겐 아는 여자가 많았다. 그 시절의 사회문화적 관용도로 볼 때, 그리고 순수한 염세주의자의 길만 걷고 있던 내 눈으로 볼 때 녀석의 인맥은 정말 획기적이고도 파격적인 것 이상이었다. 어쩌다 녀석과 함께 번화가를 걸을라치면 나는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얼마나 아는 여자가 많던지 당최 목적지에 제대로 닿기가 힘들 정도였다. 또래의 여학생들은 물론이고 윗 학년, 아래 학년 여학생들에다가 심지어 화장 고운 다방 아가씨들, 술집 아가씨들에 더해 커피숍이며 술집 여사장님들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면, 10분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려 가곤 했다. 녀석과의 번화가 동행을 그만둔 건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였다. 아는 여자가 뭐 그리 많냐고 물을 때마다 녀석은 그랬다. 쓸 데 없어, 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녀석에겐 아는 남자도 많았다. 초중학교 동창생들은 물론이고 까진 놈으로 활동하면서 알게 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각종 다방, 술집, 음식점, 음악감상실의 디제이들과 온갖 폭력서클의 싸움꾼들이 이채로웠다. 디제이들은 대개 대여섯 살 많은 남자들이었는데 대타가 필요할 때 그들은 녀석을 불렀다. 녀석이 그런 일을 싫다 않고 해 준 것은 얻어먹는 술도 술이었지만 나중에 그 일을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러기는 힘들었다. 음악에 대한 녀석의 조예는 고작 나랑 견주어도 손색 있을 정도였으니.
잘은 몰랐지만 그 즈음은 폭력서클이 유행처럼 결성되던 시기였다. 티엔티(TNT)며 나이트, 월드컵, 신세계 따위의 이름을 내걸고 생겨났는데 그 중에서도 티엔티와 나이트는 싸움 깨나 한다는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그런 서클에 많이들 가입하고 있던 친구들의 줄기찬 섭외를 녀석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는 얼굴들이 각 서클마다 고루 포진해 있다는 거였지만 정작 녀석이 그랬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녀석은 그랬다. 쓸 데 없어, 다. 그 역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담배 말고도 녀석에게 전수받은 것 중 하나가 술이었다. 담배와 달리 술은 처음부터 내 체질에 맞는구나 생각될 만큼 입에 들러붙었다. 첫 술자리에서 내 주량에 놀란 녀석이 떡 벌어진 입으로 그랬다. 너 같은 녀석 처음 본다. 그럴 법도 했다. 녀석의 단골이었던 닭내장탕 집에서 막걸리로 시작한 음주는 네 주전자를 넘기고부터 소주로 바뀌었다. 배만 부르지 않았다면 계속 막걸리로 달렸을 것이었다. 소주잔을 엎어 두고 막걸리잔으로 쓰던 대접에 소주를 부어 마셨다. 그러나, 아무리 체질이라고 해도 술에 장사 없는 법. 더구나 소주 알콜도수가 25도였을 때였다. 다섯 병을 거의 비울 즈음, 나는 결국 방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아, 정신은 말짱한데, 그런 것 같은데 왜 이리 몸이 말을 안 듣나. 마음 속으로는 몸을 일으켜 마지막 잔을 비우겠다고 줄기차게 되뇌었지만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어디서 생전 처음 듣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아, 아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가슴츠레 눈을 뜨고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녀석의 모습이 내 눈 속에 흔들렸다. 잘못 들었나? 노랫소리가 축축해지고 있었다. 잘못 보았나? 녀석의 뺨이 물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새하얀 달빛 아래 고개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얼마나 그리우면 꽃이 됐나.
찬 새벽 올 때까지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시들어가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아, 아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녀석은 고개를 아래로 꺾고 눈을 감았다. 한참을 취한 눈을 가누며 녀석을 바라보았지만 더이상 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눈을 감았다. 녀석과 나는 거기서 그렇게 잠에 빠져 있다가 주인 할머니가 흔들어 깨웠을 때에야 눈을 뜨고 비척거리며 거리로 나섰다. 왜 처울고 지랄인데? 내가 묻자 녀석은 몰라 시꺄,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녀석 어머니의 애창곡이었고 술에 취하면 녀석은 그 노래를 부르며 울곤 했다. 그럴 때마다 또 시작이네 저거, 하긴 했어도 말리지는 않았다. 항상 쾌활한 표정 뒤에 감춰 둔 염세주의자의 얼굴을 녀석이 내보이는 건 그 때뿐이었다.
 

지금도 녀석이 술에 취하면 <달맞이꽃>을 부르며 우는지는 모른다. 몇 해 걸러 한 번씩 만날 뿐이라 확인할 길도 없다. 녀석이 끝내 건달의 세계에 발을 담근 게 첩의 자식이라는 저만의 굴레 때문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만날 때마다 여전히 쾌활한 모습의 그가 진정한 염세주의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깨닫는다. 정작 사이비 염세주의자는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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