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vs. 목수정 사건(경위는 여기 참조)을 들여다보다가 모기불통신에 게재된 글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정명훈이 뭘 잘못했는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이 점은 꼭 강조하고 싶은데,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하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예술가들을 귀찮게 하지마라. 그리고 예술가들과 대화하고 싶다면 예술가와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뭘 부탁할 때는, 제대로 처신을 해라. 정명훈씨가 니들 꼬붕이냐 니들 친구냐... 원 별....
나는 지금 국립오페라합창단을 없애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둔다.
읽고 나니, 글귀에 대한 떨떠름한 감상과는 별개로, 예술에 관한 원초적인 의문 두 개가 떠오르는 거였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가란 무엇인가?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이에 관한 포스트를 쓰겠다는 건 아니고.
위에 인용한 글에 나타난 기불이님의 예술/예술가에 대한 인식은 한 마디로 오류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기불이님뿐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술가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일종의 세뇌가 작용해서고. 예술가는 '선민(選民)'이라는─세속적/속물적 보통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역사적이고도 의도적인 세뇌. 그리고 예술가를 '선민'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신비화'와 '특권화'.1
또 하나, '예술가들과 대화하고 싶다면 예술가와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있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되는 법을 어디서 배우나. 차라리 이런 말이라면 납득할 수 있겠고 공감하겠다. '예술가들이 예술가 아닌 이들과 매끄러운 대화를 하고 싶다면 예술가 아닌 이들과 대화하는 법부터 배워야.'
기불이님이 저와 같이 말하는 건 예술가의 ‘예술 구현에 사용하는 언어’와 ‘예술 구현에 사용하지 않는 언어’ 즉 일상어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예술 행위와 일상 행위를 혼동한 것이기도 하다. '커피'라는 일상어를 ‘악마의 유혹’이라는 시어로 작품 안에 해석해 낸 시인이라고 해서 커피숍에 가 ‘커피 주세요’ 그러지 ‘악마의 유혹 주세요’라고는 하지 않는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정명훈이 '도대체 제 정신을 좀 차리세요. 공부 좀 하란 말이야. 세상이 그런게 야니야. 이 계집애들이말야. 한 밤 중에 찾아와서'라고 했다면2 말 그대로 ‘세상은 호락호락한 데가 아니니까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하란 말야, 이 계집애들아’라고 한 거지, 그걸 음악가 정명훈이 한 말이므로 '3번 첼로, 넌 너무 튀어. 그래, 조금만 감정을 절제하면서 살짝 처진다는 느낌으로 따라가 봐, 오케스트라라는 데는 호락호락한 데가 아냐'3쯤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얘긴가 뭔가.
평론가 이명원의 평론집 <해독> 머리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구절이 나온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피력하는 것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 그 문제의식이란 가령 나를 포함하여 비평가들이 이제라도 대중들과의 섬세한 '의사소통'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주장을 하는가 하면, 최근 발표되고 있는 비평문들을 읽다 보면 지식인들만의 '은어체계'를 방불케 하는 글들이 종종 눈에 띄기 때문이다. 현란한 문체와 요란한 추상어를 남발하면서도 도대체가 그 논의의 수준이라는 것이 매우 상투적인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때 (그) 문체와 수사는 위계화된 담론의 질서를 은폐하는 장식으로 전락한다. 아무리 어려운 논리라도 쉽게 풀어 쓸 수 있으며, 아무리 복잡한 담론이라도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는 글쓰기는 정녕 요원한 것일까.
(이명원 <해독> 저자서문─글쓰기 또는 부드러운 해독 중 일부)
마지막으로 사족 삼아 경험담 하나를 달자면, 아주 오래 전에 시를 공부할 적 얘긴데, 꽤 고명한 시인을 술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술자리라는 데가 으레 그렇듯 정치에 관한 얘기도 하게 되었고 이런 저런 대화 중에 그 시인이 당시 ─아주 비열하고 천박한 행태로 유명한─ 정치인 누군가를 거론하며 ‘그 개새끼’라고 하자 좌중의 누군가가 ‘선생님, 시인의 입에서 어찌 그런...’ 한 데 대해 시인 왈,
“술자리에서 정치인 얘기하는데, 웬 시인?”
(민노씨의 글 4-ㄱ 참조)
***
이 글은 순전히 기불이님의 '예술/예술가론'에 대한 반론이지 '정명훈 vs. 목수정 사건'과는 하등 관련이 없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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