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대중 선생 서거일에 첫 대목을 쓰고 나서 도저히 더 이을 수 없어 놔뒀다가 이번에 완성해 포스팅하는 것입니다.

1992년 겨울의 어느 새벽, 나는 도쿄 외곽 작은 도시의 허름한 사글세방 다다미에 아무렇게나 앉아 술잔을 비워대고 있었다. 몸이며 마음이며, 추스를 기운이 조금도 남지 않아 정말 아무렇게나 퍼질러앉아 그랬다. 창밖으로 희부윰한 미명이 시작되고 있을 즈음, 울음이 터졌다. 새벽 고요 속에 부끄러울 것 없이 꺼이꺼이 울어대는 동안, 밤새 한국의 대선 개표상황을 생중계해 주던 NHK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환청처럼 끊임없이 귓바퀴에 감기고 있었다.
"김영삼 후보의 당선이 확정적입니다!"
일본 사람들 대부분은 내가 가진 정서와 한국 대선에 대한 내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어떤 이는 그것들이 일본으로 치면 20년쯤의 과거에 소수의 일본인에게서나 볼 수 있던 양태라고도 했다. 딱 한 사람, 서로를 부를 때 악의 없는 '조센징'과 '쪽바리쉐키'를 거리낌 없이 난사하던,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고기구잇집 주방장 보조 스즈키만 3분의 1쯤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는데,
"난 오키나와 출신이다."
라고 그가 덧붙였을 때 그 역시 내 정서/한국 대선에 대한 반응을 잘못 짚은 건 마찬가지구나, 생각했다.
보편타당하고 공명정대한 신념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버리려는 이를 존경하고 지지하는 일과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 그게 더군다나 국가 차원이 아니라 그 구성원들 사이에서까지 암묵적으로 약속된 사회. 누구나 아는 것처럼 1990년대 중후반, 정확히 말하면 김영삼 정권이 끝나고 김대중 정권이 시작됐을 때까지 이 나라가 그러했다. '용납되지 않는', '암묵적으로 약속된'이라는 표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유비적 표현이라 구체감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내게는 이 말이 가장 유력하다. 사람이 사람을 가장 무서워해야만 하던 시대.
이와 같은 폭력적 프레임이 이 땅의 모든 이에게 씌워진 것이었다면, 집단가학적 프레임을 하나 덧써야 했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통칭 '전라도'. 앞의 프레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잔인하고 치사한. 하나의 프레임에 맞춰 사는 건 마음먹기에 따라 쉬운 일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씌워진 거라면 공평하므로 그나마 견디고 살 법하다. 개가 되든 소가 되든 거기 맞추기만 하면 연명은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두 개라면? 숫자로는 둘이지만 본질적으로 그건 무한한 억압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고, 해도 터지고 안 해도 터지는.
나는 김대중 선생을 존경했다. 보편타당하고 공명정대한 신념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았던 이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지만, 전라도 태생의 내가 그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말 뱉기야 뭐 어려웠을까. 그 뒷감당하기가 버거웠다는 거다. 내 사회적 위치가 당시의 공적 억압 시스템에 노출될 리 없어 거기까지 염려할 필요는 없었대도, 나와 비슷한/비슷할 만한/비슷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몹시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참 가지각색으로 유무형의 폭력을 당했다. '빨갱이 새끼'라는 욕부터 '전라민국 출신이 다 그렇지 뭐'라는 비아냥까지1. 이승만과 김구의 차이를, 박정희와 장준하의 차이를,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과 김대중의 차이를 아무리 설명해도 진중하게 들어 주는 이가 많지 않았다2.
1992년 대선 결과를 이국에서 지켜보며 처절하게 울었던 건 단순히 내가 존경하는 이가 당선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3. 사람이 사람을 가장 무서워해야만 하는 시대가 끝나기를, 아무런 합리적 이유 없이 사람이 사람을 차별4하는 세상이 끝나기를 바라는 희망이 다시 한 번 좌절됐다는 데서 온 허망함 때문이었다. 그 희망의 키를 쥐고 있다고 믿었던 김대중 선생이 낙선했다는 데서 비롯된 충격은 이 땅의 인민들에 대한 배신감을 넘어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했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싸다. 자조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무지몽매가 가슴 찢어지도록, 영혼이 만신창이 되도록 슬펐다.
그 때로부터 무려 20여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이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저 암흑의 시대를 옥죄던 일상적 파시즘의 사회가 이 나라에 역사적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까? 가슴 미어지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혀. 아니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회귀한다고 했던가. 우리는 다시 1992년을 산다. 영원히 봉인된 줄만 알았던 파시즘의 악령이 다시 살아나 곳곳을 떠돈다.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부를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그것도 모자라 그런 족속들이 잘 살 뿐만 아니라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이들의 후손들이 핍박 당하는 사회, 수백 명의 동족을 학살한 살인마들이 떵떵거리며 잘 살 뿐만 아니라 그런 인간들을 비호하고 옹위하는 사람/집단이 적지 않은 사회... 아, 모든 것이 왜곡되고 부조리한 이 더러운 가엾은 나라.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5

-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이들이 참 비상식적으로 많았다. [본문으로]
- 전라도 사람들 가운데서도 김대중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이가 많았다. 지역적 출신성분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일종의 피해의식이었을 거다. [본문으로]
-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였다면 어디 감히 만인이 지켜볼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나 있겠나. [본문으로]
- '지역차별'이라는 말을 '지역감정'이라는 말로 대체하여 알게 모르게 의미훼손을 저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울 때가 많다. [본문으로]
- 이 문장, 교조적으로 해석하지 마시기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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