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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했다. 그건 해석이 필요한 행위였다, 절대적으로.

처음에 아이들은 오직 두 개의 물체에만 집중했다. 하나는 손, 다른 하나는 뺨. 그리고 약간의 시간차는 있었지만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아이들의 두뇌는 그것들의 주체를 반사적으로 파악했다. 그런 다음, 그러므로 경악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소리를 낸 아이들보다 들숨과 함께 꿀꺽, 비명을 삼킨 아이가 많았다. 그건 그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폴이 장의 따귀를 후려갈기다니, 그것도 많은 아이들이 목격하기 쉬운 교단 위에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다면 아니, 종소리와 함께 칼 같은 시간 관념의 라틴어 선생님이 나타나지만 않았더라면? 사건을 목도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머릿속에 라틴어 가정법 미래를 떠올렸다. 그러는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스펙타클은, 피격 후 1, 2초 안에 짐승 같은 반사작용으로 허공을 가른 장의 주먹이 정확히 폴의 콧잔등에 날아가 박히며 낭자한 선열을 뿌리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세적 흐름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오래 전부터 앙리는 생각해 왔다. 학업성적은 물론 싸움실력 역시 최상위인데다가 백작 아들이기까지 한 장이 그에 걸맞는 힘을 갖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준수한 얼굴, 타고난 몸매에 호방한 성격까지 갖췄으니 남녀 학생을 막론하고 그를 우러르지 않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문제는, 장의 힘이 차츰 변질돼 갔다는 것이다. 특히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신뢰가 거의 확고해졌을 무렵, 측근 서너 명과 함께 반 아이들의 물건이나 돈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빼앗기 시작한 데서 앙리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외인 것은 폴이라는 아이가 그 불씨를 당겼다는 거였다. 저 녀석, 뭐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평소에 눈에 뵈지도 않던 녀석한테 뺨을 얻어맞았다는 사실을 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반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정통으로, 철썩 소리가 나도록. 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도록 후회스러웠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었든 말든, 라틴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든 말든 녀석의 얼굴을 짓뭉개 줬어야 했다.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녀석, 왜소한 몸집에 거미의 그것 같은 갸냘픈 팔다리, 못 생겼다는 말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얼굴, 최하위 그룹에 속한 학업성적, 말을 더듬느라 발표도 제대로 못할 만큼 소심한 성격. 못난 구색은 저 혼자 다 갖춘 그딴 녀석에게 얻어맞았다는 사실이 더없이 수치러웠다. 장은 바드득 이를 갈았다.

근데, 저 녀석 어쩌려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라틴어 수업이 명사의 소유격 용법에서 막 동사 기초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한 아이의 입에서 독백처럼 흘러나온 말이 처음으로 폴의 행동에 어떤 의미부여를 해 주었다. 만일 붐송이나 제라르 같은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장 그룹의 행패가 심해지면서 반감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이 하나 둘 생겨났고 그 아이들은 붐송과 제라르를 중심으로 은밀히 모여들었다. 주로 중상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집안에다가 학업성적도 그쯤 하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장의 힘에 맞서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담임 선생님의 후광이 여전히 찬란한 장의 힘은 막강하기만 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폴이라니. 그건 분명히 해석이 필요한 행위였다. 거기에 꼬리를 물고 아이들 사이에서 다른 의문 하나가 더 생겨난 것은 라틴어 선생님이 누군가를 일으켜세워 질문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혹시 쟤, 숨은 고수 아냐?

첫번째로 생겨난 의문에 대한 의문형 대답이자, 4분의 3 내지 5분의 4는 농담으로 만들어진 거였다. 저급한 상상력의 소산이기도 했다. 거품 같은 거라서 이내 사그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다른 전언성 발언 하나가 그 위에 몇 방울의 기름처럼 끼얹어졌다.

폴의 지금 덩치가 초급학교 3학년 때 덩치래.

어떤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추적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도 없었다. 하지만 한 번 태어난 말은 어쨌든 살이 찌기 마련이었다.

초급학교 땐 꽤 날렸다는 얘길 누구한테 들은 것 같아.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순해 빠져서 그렇지 한 번 화나면 무서웠대.

펜싱도 했다며?

사바테를 3년 동안 꾸준히 배웠다더군.

쟤네 아버지가 외인부대 출신이라 지독하게 운동을 시킨다는 얘기도 들은 적 있어.

4학년 땐가, 같은 구역에 사는 중등학교 학생을 반 죽여 놨지.

5학년 땐 또 어떻구. 우와, 프쉘스트릴에서 삼 대 일로 붙었는데 잽도 안 되는 거야. 딱 세 방, 니킥, 하이킥 그리고 양념 같은 엘보우 한 방! 아트였어, 아트.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앙리는 무릎을 쳤다. 모든 의문을 한꺼번에 풀어 줄 말들이 사방에서 봉화처럼 피어올랐다. 폴이 장의 뺨을 후려치던 순간을 복기해 보았다. 사브르의 날처럼 날카롭게 허공을 긋는 폴의 손을 전혀 피하지 못하고 장은 그대로 얻어맞았다. 기습이라고는 해도 운동신경이 빼어난 장이었기에 적어도 목이나 어깨쯤으로 맞았어야 옳았다. 그러나 폴의 손은 정확히 장의 광대뼈 위에 얹혔다. 여기에 더해 앙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게 있었다. 폴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비록 적이지만 상대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가격한 점이 그러했다. 게다가 그 기가막힌 타이밍이라니.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시간 관념이 투철한 라틴어 선생님 수업시간이라는 점을 멋지게 활용했다. 근사한 녀석이군. 앙리는 빙그레 미소지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장은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장은 아까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팠다. 뺨에서 시작된 통증이 불기운처럼 얼굴 전체로 확 번져나가더니 머리통을 일시에 뒤덮었다. 그러다 그게 어깨를 타고 흘러 가슴께까지 얼얼하게 전해졌다. 기습적으로 얻어맞은 탓인지도 몰랐지만 그런 손맛은 입때껏 처음이었다. 게다가 그 순간 마주친 폴의 눈은 살기로 가득했다.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죽여 버리겠다는 소름끼치는 눈빛이었다. 더우기, 교실 안에 떠도는 얘기들을 전해 주는 측근들의 말들은 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은둔 고수, 펜싱, 사바테, 외인부대, 니킥, 하이킥, 엘보우……. 생각해 보면 자신은 그저 또래 아이들에 비해 힘이 세고 주먹질을 좀더 잘 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각종 무술에 온갖 격투기술이라니. 펜싱계에 전해내려 오는 얘기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장으로서는 사태의 심각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참된 고수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법. 장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자꾸 목이 말라왔다.

눈 앞을 가로막고 있던 안개가 걷히고 환한 햇살이 들이비치는 기분이었다. 앙리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장의 힘에서 아이들이 풀려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을 충분히 부추겨 둘 필요가 있었다. 이미 장에게 도발한 폴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처럼 아이들 편이 되어 줄 것이 틀림없었다.

나쁜 자식들, 오늘도 내 바게트를 뺏겼어.’

앙리의 그 말이 실마리였다. 실타래 풀리듯 여기 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20상팀을 뺏겼어.’

‘20상팀? 웃기지 마. 70상팀이라구.’

‘70상팀은 나서지 마. 1프랑이니까.’

‘1프랑도 조용히 해 줄래? 1프랑에다 바게트까지니까.’

모두 닥쳐. 매일 30상팀씩 적금 붓는 거 아니라면.’

아이들은 대부분 도시락으로 가져 온 바게트나 돈을 뺏겼다고 호소했다. 물론 거위털로 만든 퀼스나 질 좋은 목탄 같은 물건을 빼앗긴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교실에 넘실대는 그 온갖 얘기들 가운데 단 하나도 폴은 듣지 못했다. 행여나 은둔 고수의 귀에 들어갈까 봐 아이들이 조심하느라 그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극도의 불안에 휩싸인 폴의 상태가 거의 패닉이어서였다. 라틴어 선생님의 말이 들리기는커녕 얼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질식할 것만 같은 공포감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감히 장의 얼굴에 손을 대다니, 더구나 철썩 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려퍼지도록. 결코 고의가 아니었음을 장이 알아 줄 리 없었다. 난 그 때 교탁 위에 날아다니고 있던 모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손을 휘두른 것뿐이라고, 그 녀석이 지난 수업시간 때부터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바람에 참을 수가 없었노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없을 거였다. 그 때 하필 네가 교탁 가까이를 지나간 것뿐이라고 울며불며 호소해봤자 씨도 안 먹힐 게 분명했다. 까매졌다 노래졌다 붉어지기를 수시로 반복하는 칠판을 바라보며 폴은 연신 한숨을 쉬었다. 창 밖으로 뛰어내려 버릴까? 생각하다가 폴은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긴 1층이구나. 라틴어 선생님 모르게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건 수업이 끝나자 마자 거행될 내 단죄식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 때문일 거야. 저 아이들 중에 내 처지를 가엾어하는 아이가 하나라도 있을까? 폴은 코 끝이 찡해지며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라틴어 선생님이 나가자 마자 아이들이 일어섰다. 앙리의 주도 아래 아이들은 장 그룹이 앉아 있는 교실 뒷편으로 몰려갔다. 장을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서른 두 명의 아이들이 에워쌌다. 자기 자리에 남아 있는 아이는 폴 하나뿐이었다. 자신에게 어떤 끔찍한 벌이 내려질까를 생각하며 폴은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바들바들 떨리는 두 무릎을 손으로 꼭 붙들고 있었다.

이제 너의 시대는 끝났다, .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폴과의 결투에 응할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아이들에게 빼앗은 것들을 돌려 주거나 그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거나 할 건지.”

능기적거리며 장 그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그 다섯 아이들은 교실 뒷벽 쪽의 포위망 가장 약한 곳으로 움직였다. 완전한 몰락에 이르지 않은 장 그룹에게는 아직 약간의 권위가 남아 있었다. 그 앞을 함부로 막아설 아이는 없었다. 포위 진영이 살짝 허물어졌다. 바로 그 때 앙리가 소리쳤다.

!”

앙리의 고함이 일종의 신호가 되었다. 장 그룹 아이들이 으아아 소리치며 포위망을 뚫고 뒷문을 통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폴 또한 끄아아 소리지르며 앞문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더니 장과 다섯 아이는 동쪽 출입구 쪽으로, 폴은 그 반대쪽 출입구를 향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이 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장 그룹의 뒤를 쫓아 교실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 이 쪽이야!”

앙리가 소리쳤지만 폴은 들은 체도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갔다. 하는 수 없이 앙리는 아이들 꽁무니를 쫓았다. 사단은 이 때부터 나기 시작했다. 괴성을 지르며 복도를 달려가는 아이들을 본 다른 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뒤를 따랐다. 1층의 모든 아이들이 괴성을 질러대고 쿵쾅거리며 교사를 빠져나가자 2층의 아이들이, 이윽고 3층의 아이들마저 뒤를 이어 몰려나갔다. 학교를 빠져나간 567명의 아이들은 시내를 가로지르며 뽕네프 다리까지 줄창 달렸다. 처음에는 소리를 질러대기만 하던 아이들은 급기야 닥치는 대로 부수고, 때리고, 자빠뜨리고, 짓밟았다. 선두에는 장 그룹, 그 뒤로 앙리와 그 반 아이들에 이어 폴 하나만 빼고 그 학교 모든 아이들이 만든 인간띠는 장관이었다. 아이들의 소동은 마침내 어른들을 자극했다. 그렇잖아도 불만이 팽배해 있던 시기였다. 빵 없으면 고기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소리를 왕비라는 여자가 지껄였다는 소문이 민심을 더욱 흉흉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소동이 어른들의 난동으로 변한 건 순식간이었다. 파리 전체가 아비규환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살육, 방화, 약탈, 강간……. 지옥이 따로 없었다.

죽을 힘을 다해 세느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달리던 폴은 숨이 차올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호흡을 고르며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본 폴의 눈에 파리 시내의 참혹한 전경이 들어왔다. 곳곳에 불기둥이 치솟았고 연기가 자욱했으며 시내를 누비고 다니는 군중의 함성이 괴물의 울부짖음처럼 메아리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폴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모기 한 마리 잡으려고 휘두른 그 아이의 손이 엉겁결에 장의 뺨을 후려갈긴 1789714, 프랑스에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편소설:짧은 소설, 엽편소설:더 짧은 소설, 파편소설:길이에 상관 없이 파편 같은 소설(非틀문학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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