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돌베개(2006)
부제 : 추방당한 자의 시선
디아스포라Diaspora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파종(播種)에 있다. 파종은 '뿌려진 것'으로서 그리스 본토 도시에서 해외 식민시로 이주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후 한 번의 중요한 어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기원전 586년 유대 왕국이 바빌로니아에 패망한 뒤 여기 저기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이나 그 땅을 가리키게 된 것. 이 '이산(離散) 유대인들 혹은 그들의 유배지'라는 의미의 디아스포라는 오늘날 의미 확장을 통해 '어떤 이유로든 비자발적으로 자기가 살던 땅을 떠나야 했던 사람이나 그 집단'을 이르게 되었다. 용례로 보면 넓은 의미에서 '난민'이나 '망명자'도 디아스포라에 수렴될 터이다(브리태니커/위키백과 참조. 마지막 문장은 주관 8할쯤 보탰음).
지은이 서경식은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다. 재일조선인은 특별함을 넘어 특이한 존재들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스웨덴계 영국인과 전혀 다르다. 이들의 국적 정체성은 분명하다. 미국인이거나 영국인이다. 미국인이라는 건 미국에 사는 사람이라는 거고 영국인이라는 건 영국에 사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데 재일교포는 다르다. 그들은 한국계(혹은 조선계) 일본인이면서도 국적 정체성은 일본인이 아니다.
국적에 대한 국가의 정책은 나라마다 다르다. 대별하면 속인주의(屬人主義)와 속지주의(屬地主義)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본은 속인주의를 따르고 있다(우리 나라도 같다). 둘의 차이점 내지 장단점 비교 따위는 그만두고,1 아무리 속인주의라고 해도, 그게 국가 정책이라고 해도 역사적인 차원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전후 조치는 비인간적인 차원을 넘어 패륜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대우 역시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나아진 게 없다.
책은 프롤로그로 시작해 4장의 본문을 거쳐 에필로그로 끝난다. 핵심은 프롤로그와 1장.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재일조선인인 자신의 처지를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涸轍鮒魚2)에 빗댄다. 그만큼 절박하다.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프롤로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맺는다. '그래도 여기밖에 살 곳이 없는 것이다'.
'런던 2001년 12월'이라는 부제의 1장 '죽음을 생각하는 날'은 런던 교외에 있는 칼 마르크스의 무덤에서 시작한다.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청년 마르크스가 쓴 <독일 이데올로기>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제11항이자 그 자신의 묘비문이라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지금, 이 세계에 절망해, 어떻게든 세계를 바꾸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존재'3하므로.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는 이미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일까.
저자는 다시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프리모 레비의 무덤에 이른다. 알려진 바와 같이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태인이자 현대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끝내 수용소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그는 생전 유대인 민족의 피난처로서 이스라엘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이스라엘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은 어떤가. 과거 아우슈비츠로 표상되는 억압과 박해의 피해자4였던 유태인들은 이제 팔레스타인으로 표상되는 탄압과 차별의 가해자로 군림한다5.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는 책의 내용과 밀접하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디아스포라 양산 체계를 이해하는 데 상징적 의미를 가지므로 언급해 둔다.
2001년 8월, 남아공화국 더반에서 개최된 유엔 반차별회의(일면 더반 회의)의 주요 어젠다는 아프리카 노예제와 노예무역 등 과거 식민지 정책에 대한 사과 및 배상, 인도의 카스트제도 문제와 아울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였는데, 이 주요 어젠다를 반대한 나라가 미국과 이스라엘이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시오니즘이, 따라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인종차별에 해당한다는 전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노예제 또한 이미 해결된 문제이므로 새로이 상정할 필요가 없는 어젠다라고 하여 대표단을 철수하였다.
<디아스포라 기행>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는 의외의 이력을 가진 이들이 몇 있다.
먼저,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 <탄호이저>, <니벨룽겐의 반지> 등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로 잘 알려진 그가 1850년에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19세기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의 주요 제창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둘 다 나치에 협력한 이력의 소유자들인데, 슈테판 츠바이크가 슈트라우스에 관하여 기록한 문장을 그대로 옮겨보면, '그의 예술적 에고이즘의 견지에서 보면 어떤 정치체제든 상관 없던 셈'이라고 한다(<디아스포라 기행>에서 재인용)6. 이들이 전후 음악적으로 더 큰 명성을 얻은 반면,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22일, 망명지 브라질에서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했다는 뉴스를 듣고 아내와 함께 음독 자살했다(그의 유서 참조).
<디아스포라 기행>에서는 다음 구절이 가장 흠뻑 가슴에 젖는다.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향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기행> 한국어판 서문 중
완독 후 책 뒤에 이렇게 써 두었다.
'디아스포라 아닌 자는 반동(反動)이다'.
위험한 이분법이지만, 지구에 발 딛고 사는 이들 중에 디아스포라 아닌 이들은, 온전히 정착해 사는 이들은, 그래서 '바로 지금, 이 세계에 절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세계가 바뀌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은 '지구인'의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그들은 최소한의 공존의 방법도 모르거나 모르는 체 할 터이므로(이 포스트 참조)

- 그러나, 오늘날 속인주의는 특히 지구적 차원에서 지양되어야 할 정책이다. 아나키스트 입장에서 보면 '국적'이라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거다. 지구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그저 '지구인' 아닌가. [본문으로]
- 독음은 '학철부어' [본문으로]
- 《디아스포라 기행》, '마르크스의 무덤' 중 [본문으로]
- 아우슈비츠가, 그리하여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들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최악의 피해자라는 우리의 상식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언젠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책의 리뷰를 통해 근거를 밝힐 것이다. [본문으로]
- 알 만한 새끼가 그럴 때 더 화가 치미는 건 인지상정이다. [본문으로]
- 어쩌면 서정주에 대해서도 같은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야말로 담백하게 말하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고 지들만 좋자고 열씨미 자위했다는 것. '참여'네 '순수'네 하는 소리 집어치우고 간단하게 하나만 생각해 보자. 세상 사람들이 듣고, 보고, 읽게 하기 위해 하는 예술 아닌가. 그러면 적어도 들어 주고, 봐 주고, 읽어 주는 이들 핍박하는 족속이랑 띵가띵가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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