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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디카를 샀다

from NonFiction 2008/08/1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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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방수기능도 없는 똑딱이 디카를 목욕시켜 버린 후 여러 날 디씨인사이드, 다나와 등을 돌아다니며 알아본 끝에 펜탁스 K200D를 눈 질끈 감고 질러 버렸다. 사실 아무리 보급형이라고는 해도 DSLR급까지 절실한 것은 아니었다. 후지필름 파인픽스 F810으로도 아쉬움 없이 필요한 사진 잘 찍어 오던 터였다. 특히나 기계치인데다가 단순/복잡, 구식/최신, 용도를 불문하고 기계라는 거에 손톱만큼도 흥미가 없는, 그래서 F810을 망가뜨리고도 핸드폰에 디카 달렸는데 뭐 걱정이냐는 아내의 말에 엄두도 내지 못하던 터였다. 그래도 그렇지, 두고 두고 볼 만한 사진이나마 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어 헛물 켜듯 인터넷 여기 저기를 돌아다녔다. 

필요는 노력을 낳고 노력은 기회를 만들어 주는 법이라지. 오랜만에 처가집 모임이 있어 애들 데리고 딩가딩가 다녀왔다. 모임 내내 손 아래 처남이 찍사노릇을 했는데 줄곧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에만 눈이 갔다. 캐논이었나, 하여간 DSLR의 유혹적인 바디, 매혹적인 셔터음이 자꾸 맥주를 들이켜게 했다. 그렇다고 경제적 실권 없는 내가 사후대책, 예를 들어 쎄빠지게 꼬불쳐 온 비상금을 털어 현금박치기로 끝장을 본다던가 하는 방법 따위가 아니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이끌림, 이었으나 결정적으로 처남이 이메일로 보내온 사진에 비상구가 있었다. 아내를 곁에 앉히고 처남이 보내온 사진을 감상했다. 그야말로 쨍한 사진은 느긋하게 감상하고 흔들리거나 어두운 사진은 잽싸게 넘겼다. 사진을 다 본 후 아내의 입에서 복음이 터져나왔다. 카메라가 비싼 거여서 그런가, 사진 증말 좋다아. 

누가 들으면 집 팔아서 사업하겠다고 나서는 남자 얘긴 줄로 이해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나 혼자 좋겠다고 이러는 거 아냐. 내가 왜 이러겠어? 우리 가족들, 나중에 즐거워하고 지난 날들 돌이켜보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냐 말야. 아내에게 한 말이 대충 이와 같다. 물론 이 따위 말성찬에 호락호락할 리 없는 아내는 내가 찬희랑 두 끼니를 거르고 나서야 디카구입을 허했다. 그녀는 덧붙였다. 젤 싼 눔으루.
고르고 골라 번들렌즈 낀 K200D를 샀다. 들으면 놀라 자빠지다 짚은 손으로 베개를 집어들어 휘두를 아내를 염려해 구입가를 3분의 2만 아룄다. 카드고지서 날아오면? 그건 그 때 일이고. 

K200D로 찍은 사진을 하나 하나 감상하면서 무척 흡족해하는 아내의 뒤통수를 바라보다가 든 생각. 근데, 도대체 카메라 망가뜨린 게 누구인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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