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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우리 동네

from NonFiction 2009/02/24 22:41

이문구 지음
랜덤하우스 중앙(2005)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다. 함께 샀던 책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선택이었다. 도회적 세련미를 갖춘 책과 굳이 대비하자면, 향토적 전통미를 살린 책. 하지만 두 소설을 읽고 나서 든 느낌은 왠지 모를 쓸쓸함이었다. 이제 우리 동네 황씨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줄 독자가 몇이나 될까, 지방 민중들의 신산한 삶에 천착할 작가가 몇이나 될까. <당진 김씨>의 우애령 같은 이가 아직 건재하기는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고 감히 그럴 만하지 않은데도, 이문구에서 이문열을 연상하는 건 이름뿐 아니라 이른바 '출신 성분'이 비슷해서라는 저급한 수준의 내 개인적 유추력 탓이기는 해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목 중 하나를 저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거의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 안에 체화된 세계관이 이렇게나 극명하게 다른 것을 보면, 같은 물이라도 뱀이 취하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젖이 된다는 잠언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구나 하는 사실을 아주 저리게 느낄 수 있다.(참조 : 이문열, 찢을까 살라 버릴까)

《이문구 전집》 26권 중 열두 번째 작품집인 『우리 동네』는 작가가 1977년 「문예 중앙」에 발표한 <우리 동네 황씨(으악새 우는 사연)>을 시작으로 1981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한 <우리 동네 조씨>까지 여덟 편의 소설을 엮은 연작 장편이다. <우리 동네 황씨>를 발표한 1977년은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서슬 퍼렇던 시절, 포장마차에서 소주 비우며 유신헌법이 어쩌네 하는 소리만 뱉어도 긴급조치9호라는, 세상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복날 개처럼 끌려가던 때였다. 이 같은 시대 상황 아래서 『우리 동네』는 국가/근대/도시라는 억압기제에 길항하는 인민/전통/농촌을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는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굉.장.히 재밌는 소설이다. 그러나 이를 읽어내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미를 느끼려면 적어도 두 번은 숙독을 해야 할 성싶다. 책 뒤에 '어휘 해설'이라는 게 따로 마련되어 있다고는 해도 소설 안에 등장하는 순우리말 어휘나 사투리, 농촌 인민들의 일상어로 구성된 문장들을 '해석'해 가며 읽기 위해서는 사전이 필요할 정도다. 시기적으로 30년 저 편의 소설이라는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오늘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 말'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나왔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는데, 언어라는 게 본래 시대에 따라 그 뜻이며 쓰임이 자연스럽게 분화하고 변화하는 것이므로 이를 막을 수도 없는 한편 인위적으로 막아서도 안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옛말들이 갖고 있던 풍부한 정서에 비해 함량 미달인 새 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적잖이 안타까운 일이다.

지향/이념을 막론하고, 인간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라면, 소외된 이들의 숨을 담아내는 게 또한 소설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여기에 더하여, 작가 될/된 이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인간말종의 인물을 그린다고 해도 매몰차게 눈 감거나 비인간적인 면모만을 함부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 『우리 동네』에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은 문학도의 철학이다. 선생 같은 이가 안 계셨더라면 글줄 깨나 쓴답시고 세상에 나가 곡학아세를 일삼는 이들의 더러운 목소리에 더럽혀진 귀를 어찌 씻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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